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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출산의 비밀

太虛 2012. 4. 7. 11:36

[동아일보]

5월이 되면 많이 부르는 노래 '어머니의 마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아기를 낳는 일은 여자의 일생에서 가장 크고 긴 고통을 동반합니다. 출산은 현대의학이 발달하기 전까지 젊은 여자의 생명에 가장 큰 위협이었죠. 현대사회에서는 출산 중 사망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여전히 두려운 것임은 틀림없습니다.





인간의 태아의 머리는 진화 과정에서 커졌다. 그러나 산도는 그만큼 커지지 않았다. 결국 인간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출산을 할 수 있게 됐다. 동아일보DB

반면 대부분의 동물들에겐 새끼를 낳는 일이 그다지 힘들지 않습니다. 유독 인간에게만 분만이 위험한 일이지요. 왜 그럴까요.

인간 이외의 동물들이 낳는 새끼의 머리는 산도(産道)보다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 태아의 머리는 산도보다 많이 큽니다. 진화 과정에서 태아의 머리가 커졌는데 산도는 그만큼 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두 번 몸을 비트는 태아

400만∼500만 년 전의 초기 인류는 여러모로
유인원과 닮았습니다. 머리 크기도 침팬지 정도였죠. 단지 직립보행을 한다는 점만이 유일한 인류의 특징이었습니다(3월 17∼18일자 B7면 '최초 인류를 규정짓는 기준' 참조). 이후 머리가 점점 커졌습니다. 하지만 몸 크기는 200만 년 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지요. 또 직립보행을 하기 위해서는 골반이 좁을수록 좋기 때문에 결국 인류는 큰 머리와 상대적으로 작은 골반을 가지게 됐습니다.

이렇게 머리와 골반의 크기가 맞지 않는 상황에서도 출산과 분만이 수도 없이 이뤄져 왔습니다. 산도보다 큰 머리를 가진 아이를 낳기 위해 여자의 골반에선 뼈와 뼈 사이가 물렁해졌습니다. 출산 때는 골반뿐 아니라 골격 전체의 관절이 벌어집니다. 출산 후에는 많은 경우 벌어졌던 관절이 완전히 이전 상태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고 나면 옷매무새가 이전과 같지 않다는 말을 하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아이를 많이 낳은 여자의 골반에는 벌어졌다 아물어진 상흔이 기억처럼 남아있습니다.

출산은 당사자인 아기에게도
트라우마를 안겨줄 수 있습니다. 유인원인 원숭이와 다르게 말입니다. 원숭이 암컷은 새끼를 낳을 때 쪼그려 앉는 자세를 취합니다. 중력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지요. 산도에 막 들어간 태아의 얼굴은 어미의 배꼽을 향해 있습니다. 그래서 산도를 통과해 갓 빠져 나온 새끼의 얼굴은 어미의 얼굴을 향합니다. 쪼그린 상태의 어미 원숭이는 팔을 뻗어 새끼의 몸이 빠져나오도록 돕고 새끼가 몸 밖으로 나오면 그대로 품으로 가져와 안습니다. 어미의 도움으로 산도를 모두 빠져 나온 새끼는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품에 안겨 젖을 빨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출산은 다른 영장류의 출산과 180도 다릅니다. 다른 영장류와 마찬가지로 산도에 진입할 때는 인간 태아의 얼굴도 엄마의 얼굴 쪽을 향해 있습니다. 하지만 산도에 진입해 어느 정도 내려온 다음 태아는 어깨를 산도에 맞추기 위해 몸을 한 번 비틉니다. 그리고 다시 조금 더 밀고 나오다가 보면 산도의 모양이 달라집니다. 태아는 머리를 달라진 산도의 모양에 다시 맞추기 위해 몸을 한번 더 비틉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갓난아기의 얼굴은 엄마의 등 쪽을 향해 있습니다. 갓 태어난 원숭이의 새끼가 얼굴을 어미의 얼굴 쪽으로 향하는 것과 반대인 셈입니다.

○ 인간의 출산은 사회적 과정

아기를 낳는 여자는 어미 원숭이처럼 팔을 뻗쳐 스스로 신생아를 빼낼 수 없습니다. 섣불리 빼내다가는 아기의 목이 꺾입니다. 결국 갓 태어난 아기는 다른 사람이 받은 뒤 엄마에게 건네줘야 합니다.

그래서 원숭이와 달리 인간의 출산 현장에는 누군가가 있어야 합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이 역할을 해온 것은 대개 여자의 어머니나 여자 형제, 그리고 같은 집단에 있는 경험 많은 여자였습니다. 그들은 진통 과정을 함께하고 마지막에 엄마가 아기를 효율적으로 밀어낼 수 있도록 가르쳐줬습니다. 아기가 태어날 때 목이 꺾이지 않도록 잘 받아서 엄마에게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출산 직후 엄마가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이런저런 마무리를 대신해 줍니다. 아기가 나오고 얼마 후 뒤따라 나오는 태반을 받아내는 게 대표적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다른 사람과 함께해야 하는 지극히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이런 사회적인 출산 과정은 현생인류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2008년 스위스 취리히대의 폰세데레온 교수와 졸리코페르 교수가
네안데르탈인의 신생아 및 유아 두개골을 컴퓨터단층촬영(CT)해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네안데르탈인 역시 신생아의 큰 머리가 엄마의 좁은 산도를 통과하기 위해 몸을 두 번 비트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출산 과정을 겪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이 큰 머리를 가지고 태어난 첫 조상은 아닙니다. 같은 해 미국의 과학저널 사이언스에는 여자 호모에렉투스의 골반 뼈에 대한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에티오피아 고나에서 발견된 뼈인데 현생인류 여자의 골반 뼈와 매우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보다 전에 살았던 친척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여자('루시')의 골반 뼈와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호모에렉투스 때부터 큰 머리를 가진 신생아가 태어났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큰 머리를 가지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태어나는 것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사회'에 속해 있다는 뜻입니다. 만약 이것이 진정한 인류의 특징이라면, 호모에렉투스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첫 인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상희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인류학과 교수 sang-hee.lee@ucr.edu